공부/번역

Kathryn Medien, 〈Palestine in Deleuze〉(2019)

Galpie 2024. 3. 7. 16:12

들뢰즈의 팔레스타인 (Palestine in Deleuze)[각주:1]

캐서린 메디언(Kathryn Medien)

 

초록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 그리고 뒤이은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탈 행위와 식민화를 되돌아보는 일련의 글들을 집필하였다. 지금까지 잘 논의된 바 없는 들뢰즈의 이 텍스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식민주의 국가로 명명하며, 이스라엘의 식민화 프로그램을 미국의 식민화 프로그램과 선주민족들에 대한 집요한 강탈과 연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들뢰즈는 식민지적 폭력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심도있게 고려하는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고는 주장하고자 한다. 들뢰즈의 팔레스타인 관련 저술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면서, 본고의 결론부에서는 왜 이러한 텍스트들이 들뢰즈 연구자들에게 소외되어 왔는지를 질문할 것이다. 또한 이런 소외가 어떻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에 대한 예속화에 기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식민주의와의 관계가 서구의 사회 이론을 구성하였는지 생각해볼 것을 요청할 것이다.

 

주요어

자본주의, 들뢰즈, 팔레스타인, 정착민 식민주의, 시온주의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굴복 외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Deleuze, 1978: 23)
우리들의 몸에 생명이 남아있는 한 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Darwish, 1982: 12)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질 들뢰즈는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 그리고 그에 뒤이은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탈 행위 및 식민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련의 기고문과 인터뷰를 저술하였다. (1978, 1982, 1983, 1988)[각주:2] 들뢰즈(1983: 31)에게 이스라엘 국가의 건립은 ‘명백히 식민화에 관한 문제’였는데, 다만 이전의 식민지 기획과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식민지 기획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식민화된 민족들을 경제적 급부를 위해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정착민(settler) 식민지를 위해 그곳의 선주민들을 절멸시키고자 하는 것과도 동일하지는 않은 이스라엘 국가의 행동들에 대해 들뢰즈는 ‘집단 학살이지만 지리학적 퇴거에 종속된 채로 있는 물리적인 절멸이며, 팔레스타인 생존자들은 단지 일반적인 아랍인이 되어 다른 아랍 사람들에 섞여서 살아가야 했다.’(1983: 31)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용법과는 다르게, 들뢰즈는 집단 학살(genocide)이라는 용어를 팔레스타인 역사와 지리에 대한 체계적인 식민적 소거, 팔레스타인 민중의 이주, 보다 일반적으로 ‘인종 청소’라고 일컫는 것을 발화하도록(articulate) 배치한다.(Gordon and Ram, 2016; Pappé 2007을 보라) 들뢰즈가 묘사한 이런 정착민 식민주의의 강탈적 논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썼던 것처럼 ‘한 집합체로서 역사적으로 현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부정할뿐 아니라, 그들이 오랜 세월 민족 의식을 지녀온 오래된 민족이 아니라고 암시’(2000: 187)하는 기능을 한다. 팔레스타인적인 강탈을 현재진행형인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에 대한 식민화와의 관계에 위치시키기는 데까지 나아가면서,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이스라엘적인 정착민 식민주의를 탈-예외화하며 식민지적 폭력의 국제적 연결망에 주의를 집중한다. (1983, 1982)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팔레스타인 문예지 《정원(al Karmel》(Deleuze, 1988), 프랑스 신문(Deleuze, 1978), 팔레스타인 지식인 엘리아스 산바르(Elias Sanbar)와의 대담(Deleuze & Sanbar, 1982), 그리고 《팔레스타인 연구(Revue D’études Palestiniennes)》(Deleuze, 1983)까지. 다양한 수단과 매체를 통해 출간된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과 전개에 대한 분석과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전개 수단으로서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대한 검토 사이에서 움직인다. 실제로, 들뢰즈는 이스라엘적인 그리고 북아메리카적인 정착민 식민주의가 구현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태에 대해서, 오직 내부적 착취의 논리에 기반해 있기보다는 “때로는 급격한 발전을 위해 다른 곳에서 노동력을 불러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한 영토에서 거기 사는 사람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중요하다”(1982: 26, Deleuze and Sanbar, 1982)라고 말한다.[각주:3] 여기서 더 나아가 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인구집단으로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현존을 계속해서 긍정하는 들뢰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 순간 증식하는 가능성들”(1982: 29, Deleuze and Sanbar, 1982)을 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이 수많은 걸출한 분석과 연결된 시온주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고 있음에도(Said, 1979a; Pappé, 2007; Wolfe, 2006; Sanbar, 2001을 보라), 이 글들은 그의 다른 저술들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준의 참여(engagement)로 이어지지 못하였고, 들뢰즈의 동시대인들의 정치적 글쓰기와 활동들에 비해 같은 수준의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각주:4] 사실, 들뢰즈의 사상에 대한 동시대적이고 현재진행형인 정전화 작업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각주:5] 팔레스타인에 관한 그의 저술들은 이러한 연구들 중 매우 일부에서만 얕은 깊이로 탐구되거나 언급될 뿐이며, 들뢰즈와 엘리아스 산바르, 마흐무드 다르위시 같은 저명한 팔레스타인 지식인 혹은 활동가들 사이의 연결도 검토되지 않았다.[각주:6] 중요한 것은, 이것이 유목론(nomadology), 전쟁 기계, 리좀, 배치(assemblage), 탈주선과 같은 들뢰즈적 개념들을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관한 연구에 적용한 광범위한 학술 연구들을 무시하거나 삭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Svirsky, 2010, 2015, 2017; Al-Nakib, 2014; Al-Zobaidi, 2009; Shihade, 2015; May, 2008의 예를 보라) 그보다는, 들뢰즈의 팔레스타인에 관한 저술들이 겪어온 관심과 비판적 참여의 특수한 결여를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현재진행형인 들뢰즈 아카이브의 조사에 기여하고, 들뢰즈의 역사에서 급진적인 순간을 다시 말하기 위해, 식민화된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을 되돌아보도록 하겠다. 본고의 전반부에서는 이러한 저술들을 수집하고 이 작업물들에 대한 깊이 있는 독해를 제공한다. 여기서 나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이 어떻게 정착민 식민주의의 심장에 있는 강탈적 논리를 분절해내는지(articulate), 더 중요하게는 이 논리를 선주민에 대한 강탈과 자본 축적의 전지구적 체계와 어떻게 엮어내는지 검토하고 또 함께 사고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들뢰즈의 철학적 저술들을 그가 참여했던 정치적 장면들로부터 분리함으로써 들뢰즈를 비정치적인 사상가로, 그의 명백하게 추상적인 작업물들이 현대 세계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분절하는 어떤 동시대의 분석들에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Žižek, 2004; Hallward, 2006을 보라)[각주:7] 이러한 탈정치적인 독해들에 반대하여, 나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을 세심하게 숙고하면 부분적으로 선주민 연구자들과 교류함으로써 드러나는 그의 정치적 투쟁에 대한 주의집중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각주:8]

 

   최근 몇 년간 현대적인 삶과 사유를 구성하는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기 위하여 대문자 인간(Man)에 대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비판(1987)을 활용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들뢰즈의 반인간주의적(anti-humanist) 정치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떠올랐다.(예를 들어, Lippit, 2000; Parikka, 2010; Sellbach and Loo, 2015; Laurie, 2015; Ansell-Pearson, 1999; Colebrook, 2014; Grosz, 2008를 보라) 이 연구자들은 ‘동물-되기, 식물-되기, 분자-되기를 통한 인간의 비인간-되기’(Stark and Roffe, 2015: 11)를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본고의 후반부에서는 들뢰즈의 반인간주의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제시한다. 비인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나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이 대문자 인간(Man)의 식민지적 질서들에 의해 ‘내몰려’ 온 팔레스타인의 인간들을 긍정함으로써 서구의 대문자 인간(Man)이라는 범주의 폭력과 오류를 드러낸다고 주장할 것이다. (McKittrick, 2014: 3)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옴으로써 그것들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칭한 바 있는 것에 중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작업들을 조명하는 본고의 이중적 목표는 잘 탐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들뢰즈의 정치적 저술들 일군을 되돌아보는 것이고, 동시대 사회 이론에서 지식 생산의 정치학을 음미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간과된 저술들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면서, 본고의 결론부에서는 들뢰즈의 작업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들에서 이러한 팔레스타인에 관한 저작들이 인식론적으로 퇴출당한 것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알렉산더 G. 웨헬리예(Alexander Weheliye)가 “들뢰즈를 서구 유럽의 철학적 전통 내부에서만 배제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를 위대한 사상가로 변형한다고 주장하는 정통 들뢰즈주의(orthodox Deleuzianism)”(2014: 47)라고 부른 것에 찬성하며, 들뢰즈의 대중적 수용에서 이러한 텍스트들이 퇴출당한 방식은 어떤 면에서 어떤 식민지적 관계가 끊임없이 동시대의 들뢰지언 사회 이론의 진전들을 규정하고 있는 방식을 가리키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들뢰즈 자신이 그토록 강력하게 비판한, 현재진행형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과 역사에 대한 방법론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삭제에 기여하는 듯한 이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을 둘러싼 침묵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인가?

 

 

정착민 식민주의와 사라짐의 논리들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혹평을 가하기는 하지만, 배상 받아 마땅한 비극으로서 홀로코스트를 인식하고 전경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들뢰즈에게,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윤리적인 배상의 정치가 아니었다. 들뢰즈는 1988년 그의 짧은 에세이, 〈돌멩이들(원제: 그들이 여전히 그것을 볼 수 있는 거기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유럽은 유대인에게 한없는 빚을 지고 있다. 유럽은 그 배상을 치르기 시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빚을 무고한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신 갚게 했다.”(1988: 34) 홀로코스트 이후의 회복하는 정치를 향한 들뢰즈의 요구는 1983년 초에 쓰여진 에세이 〈야세르 아라파트의 위대함〉에서 더 자세히 설명된다. 이 에세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은 유대인에게 배상을 빚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홀로코스트에 대해 특이적으로 무고하며 심지어 그게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없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민중들로 하여금 그 죗값을 대신 치르도록 만들었다. (1983: 30)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에 대한 그의 비판을 제국적이고 국제적인 틀 안에 위치짓고, 이스라엘 국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유럽과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인식하면서 홀로코스트의 실재성을 긍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나데라 샬호브 케보르키안(Nadera Shalhoub-Kevorkian)이 논증한 바 “여러가지 의미로 유대인 국가의 근원적인 폭력은 신성하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2016: 24)는 것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을 동요케 하고(unsettle) 분열케 하는(disrupt) 들뢰즈의 움직임은 중요하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적인 해설들과 개념화들이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이미 가정한 채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혹은 ‘유대인’ 대 ‘아랍인’의 맥락에서 서술의 틀을 구성하는 반면, 들뢰즈의 저술들은 이스라엘을 존재하게 한 “불의함”, “폭력 행위들”, “부조리한 말들”과 “거짓된 논증”을 조명하면서 근원적 폭력들을 동요케 한다.(Deleuze, 1983: 30)[각주:9]

 

   그래서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화, 봉쇄 그리고 점령을 기존의 국민국가에서 항상 자행되었던 전투 행위의 틀로 바라보기보다, 들뢰즈는 팔레스타인 선주민들에 맞서는 데 집중해온 근원적 폭력들이 이스라엘의 끈질긴 현존의 공-구성적 요소임을 보여주면서 복잡하고도 상세하게 열거한다.

시온주의자들은 최근에 지나간 그들의 극심한 고통과, 잊을 수 없는 유럽적인 공포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했고, 그뿐만 아니라 그 다른 민족의 고통 위에서 그 다른 민족의 돌덩이들로도 그렇게 했다. 이르군(L'Irgoun)은 테러리스트라고 명명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영국 총독부를 폭파했을 뿐만 아니라,[각주:10] 데이르 야신과 같은 마을 전체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없애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각주:11] ... 마을들을 파괴하고, 집들에 폭탄을 던지고, 추방하고, 암살하고. 끔찍한 역사가 새로운 무고한 자들의 배후에서 되풀이된다. (1988: 34)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대한 수많은 비평가들의 분석들(예를 들어, Graham, 2002; Jabary Salamanca, 2015; Abujidi, 2014; Weizman, 2012을 보라)과 맥을 같이하는 들뢰즈의 논증 방향은 이스라엘 국가의 기획이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추방과 그들의 땅에 대한 사회 기반의 파괴에 의존하는 방식에 집중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에 대한 강제적인 제거와 이주는 시온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의 논리의 중심에 있으며, 그 영토를 텅 빈 곳으로 나타나게 하고 근대화를 기다리게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 건설 기획을 자연화하고 정당화한다. 사실, 들뢰즈가 논증하는 바와 같이, 토착 민족의 제거와 그들의 땅을 파괴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그 자체를” 부정하는 기능을 하며,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비우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숨기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가 비어있었고, 오래전부터 언제나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었던 땅인 척한다.” (Deleuze, 1983: 31).[각주:12]

 

   들뢰즈가 그려내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짐과 시온주의의 생성 사이의 연결은 팔레스타인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시도들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제적 외부화를 통해 근거를 얻는다.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와 함께 들뢰즈는 다른 곳에서 국가 기구가 포획의 논리를 따라 작동하면서 모든 것을 강제로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영토화 과정을 기록한다. (Deleuze and Guattari, 1987: 495; Patton, 2000: 113도 보라)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제도적인 그리고 구조적인 국가 폭력에 의해 생산되고 고착되며 정당화되는 그리고 유지되는 다수(majority) 국가 모델은 종종 군사적이고 폭력적인 (재)영토화로 마무리된다. (Deleuze and Guattari 1987: 494-5) 다수 모델, 여기서 시온주의적 사회 질서는 그것의 지리 혹은 인구의 규모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오히려 패권적인 그리고 규범적인 지위에 의해 정의된다. “다수를 정의하는 것은 당신이 순응해야만 하는 어떤 모델이다. 예를 들면, 평균적인 유럽인 성인 남성 도시거주자 ... 그 반면에, 소수(minority)에는 모델이 없다. 그것은 되기이며 과정이다.” (Deleuze, 1973: 173) 자신의 이상적인 통치 주체를 유대계이고, 현대적이며, 유럽적인 얼굴을 가진 자로 생산하는 시온주의 국가 기계는 양립 불가능한 것들에게서 대지와 생을 박탈하고(fold out), 형상적으로 그리고 질료적으로(figuratively and materially) 외부의 디아스포라적 소수로서 팔레스타인 민중을 생산한다. “[이스라엘은] 추방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 바깥에서 왔던 것처럼 굴 것”이다. (Deleuze, 1983: 31)

 

   그러므로, 들뢰즈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국가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소수화와 팔레스타인의 사라짐이라는 공-구성요소를 통해 존재하게 되는, 생을 코드화하고 가치화함으로써 작동하는 식민지적 기획으로 드러나며, 정착민 식민지적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외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팔레스타인의 풍경은 시온주의자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버림받은 사막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난민 캠프로의, 망명지로의, 봉쇄되고 점령된 구역으로의 계속되는 이동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고향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외부인 테러리스트들’으로 소략하는 것을 허용하고 정당화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의 현존을 자연화한다. “소멸되어야만 했을 아랍인 마을들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바깥에서 온 테러리스트들 취급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테러리즘을 세탁한다.” (1983: 30) 비록 들뢰즈에 의해 명시적으로 인종화된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각주:13] 일반적으로 인종화하는 것으로 이해되는[각주:14] ‘테러리스트’, ‘외부인’, ‘아랍’ 등의 정체성 형성과 수사학적 비유를 배치하는 코드화 그리고 생에 대한 밀쳐냄은 들뢰즈의 다음과 같은 담화를 이끌어낸다. “이스라엘이 행한 조치들은 적법한 반격으로 간주되는 반면(그 반격들이 너무나 지나친 듯 보이더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행동은 오로지 테러 범죄로 취급된다. 그리고 아랍 사람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사람의 죽음과 동등한 크기를 지닌 것으로도, 동등한 무게를 지닌 것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1978: 23)

 

   강제적인 외부화를 감내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에 대한 들뢰즈의 개념화는 숙명론적으로, 저항을 위한 어떠한 공간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국가 영토화 그리고 다수와 소수 모델의 생산이라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화에서, 그들은 ‘탈주선들’이 생산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탈주선은 ‘모델이 없는’ 소수적인 공간에 존재하며, 헤게모니적 질서 바깥에 존재하고 또 그 질서에 도전하는 다른 정치학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Deleuze and Guattari, 1987을 보라) 들뢰즈의 저술 안에 위치하는 반식민지적 저항의 공간을 살펴보기 전에, 지금 잠시 방향을 틀어 어떻게 시온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를 역사상 단 한 번 있는 특이한 전통으로 보는 대신 이스라엘의 식민지 기획을 전지구적 틀거리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로 어떻게 들뢰즈가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를 미국의 정착민 식민지 기획과 결합하는지를 검토하고, 두 번째로 어떻게 이런 결합이 그로 하여금 근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서구 개척자들의 계속되는 확장에서 예측되는 것이자 동시에 소수자로 코드화되고 생산된 민중을 생의 주름들(folds) 바깥으로 밀어낸 것으로 묘사할 수 있게 했는지 검토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와 전지구적 자본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Said, 2000, 1979b; Kanaaneh, 2002; Bass, 2003; Lloyd and Pulido, 2010를 보라) 시온주의 국가 건립 기획에 대한 미국의 공공연한 지지는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자연화와 정당화의 핵심이었다. 들뢰즈가 보기에 이런 지지는 미국이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민중을 아랍 사람들이라고 발화하는 데에서 드러났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한 민중으로서 역사적으로 현전함을 부정하는 기능을 하는 그러한 담론은 한 집합체로서의 그들의 정체성 그리고 고향 땅과 그들의 연결 둘 다를 근절하고 있다. 들뢰즈가 논하는 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온,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아랍 사람들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 (1988: 34)[각주:15] 이런 담론을 영속시키는 데 있어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들뢰즈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미국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이스라엘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 이스라엘 국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 히브리인들을 기다려온, 잠들어 있는 돌투성이 땅을 지키고 있던 어디선가 옮겨 온 몇 안 되는 아랍 사람들의 유령만이 있는 텅 빈 땅(terra nullius) 위에 세워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망각 속으로 몰아갔다. 이스라엘 국가를 권리상(en droit) 인정하기를 명령하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민중이 존재한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부정했다. (1988: 34)

 

   미국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아랍 정착민’으로 재코드화하고 이런 새로운 정체성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강요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이 설립된 정착 식민지를 자연화하는 임무를 위해 생명을 관리하는 기능,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망각 속으로 몰아”내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식인이자 외교관인 엘리아스 산바르와의 대담에서, 들뢰즈와 산바르 모두는 시온주의적 식민화 과정은 미국 정착민 식민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우리[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일한 역할은 사라져버리는 데에 있지요.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는 아메리카에 미국을 탄생케 한 그 과정의 재연임이 분명합니다.” (Sanbar, 1982: 27, in Deleuze and Sanbar, 1982) 들뢰즈와 산바르 둘 모두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에 대해 그리고 우연이라기엔 마치 신적인 회귀처럼 계속해서 재상연되는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에 대해 논하도록 만든 이런 인식은 정착민 식민주의에 대한 공유된 역사로부터 정치적으로 동기를 얻은 것이다. 들뢰즈가 지속적으로 지구 남쪽(Global South)의 사상가들과 교류했음을 시사하는 참고 자료로서 산바르의 작업에 대한 그의 참여를 다시 언급하면,[각주:16] 들뢰즈는 이렇게 논증한다.

미합중국과 이스라엘의 암묵적인 공조는 단지 시온주의자들의 로비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엘리아스 산바르는 어떻게 미국이 이스라엘 속에서 그들의 역사 속 한 국면을 발견해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인디언의 말살, 거기서도 역시 부분적으로만 직접적으로 물리적일 뿐이었다. 텅 비우는 것, 그들을 내부의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만들었던 게토 안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디언들이 전혀 없었던 양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측면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새로운 인디언들, 이스라엘의 인디언들이다. (1983: 31)

 

   북아메리카 선주민족들의 역경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경을 결합하면서, 들뢰즈는 정착민 식민지적 폭력의 전지구적 연결망과 선주민들 간 연대의 공유된 지형을 강조한다.[각주:17] 위에서 서술한 선주민 강탈의 논리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사라짐에 대한 그의 분석과 유사하게, 들뢰즈는 미국식 정착민 식민주의가 선주민 주체들을 땅과 생으로부터 박탈하는 생산의 과정을 경유하여 생명을 얻는다고 논증한다.

 

   이런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정착민 식민지적 역사의 공유를 지적하며, 현재진행형인 북아메리카와 이스라엘 국가 건설 기획이 순수하게 영토 확장의 욕망에서 동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의 핵심적인 단면을 표상하고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폭력적인 외부화가 “자본주의 안의 움직임”임을 논증하면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때로는 사람들을 그들의 영토에 가두어놓고서 잉여가치 축적을 위해 노역을 시키고 착취하는 것이 문제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민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때로는 급격한 발전을 위해 다른 곳에서 노동력을 불러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한 영토에서 거기 사는 사람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아메리카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 시오니즘의 역사는 바로 이 두 번째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지요. 어떻게 진공 상태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치워버릴 것인가? (1982: 26, in Deleuze and Sanbar, 1982)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 차이나는 두 가지 논리를 분절하면서, 둘 다 식민주의와의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고, 들뢰즈의 분석은 어떤 중요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새로 세워진 국가인 이스라엘과 미합중국을 분석의 장소로 삼을 때, 그 두 곳의 식민지 경제를 결합함으로써 들뢰즈는 우리에게 분석 단위로 국민 국가를 뛰어넘어 강탈적인 식민지 경제들, 개척지 확장 그리고 식민지 질서에 따른 노동 분업과 같은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발전 궤적을 구성하는 자본의 체제를 발굴해낼 것을 요청한다. 1983년의 에세이 〈야세르 아라파트의 위대함〉에서 이러한 분석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자본주의에 두 가지 상보적인 운동이 존재함을 가리킨다. 자본주의는 자기 고유의 체제를 설비하고 경영하는 내부에 한계들을 끊임없이 부과하며, 그러한 한계들을 항상 더 멀리 떠밀고 자기 고유의 기반을 더 크게 그리고 더 강도있게 재시작하기 위해 그 한계들을 추월한다. 한계를 떠미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이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아랍 영토 위에 세워진, 아랍의 배후에 있는 위대한 이스라엘이라는 꿈으로 되풀이된다. (1983: 32)

 

   여기서, 자본 축적에 있어서 강탈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끌어오면서 들뢰즈는 중요하게도 강탈의 이런 양태들을 강조하는 식민주의와의 관계들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정착민 식민지적 삭제의 강탈적 논리에 대한 분석과 함께 사유하며, 들뢰즈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발전이 정착민 식민지들의 창설을 통해 구성되는 방식에 주의를 집중하고, 비어있는 땅(terra nulluis)으로의 전진과 같은 정착지의 사회적 공간적 확장을 통해, 게토, 난민 수용소, (원주민) 보호구역과 같은 울타리(enclosures)의 창출을 통해 사회적 공간적 경계선을 다시 설정하는 방식에도 주의를 집중한다. 종종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적 축적을 진보 그리고 발전과 연결하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많은 분석과 대조적으로,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 1972)의 유명한 논증처럼,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어떠한 목적론적인 주장을 파열시키며, 자본의 축적에 현대적인 힘을 부여하는 강탈 그리고 폭력에 수반하는 논리들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식민적 자본주의에 대한 들뢰즈의 비교가 그 두 기획 사이의 수많은 차이점들을 다 풀어내는 데에는 실패하지만,[각주:18] 그의 분석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장 그리고 자본 흐름의 중심적 조직화 원리로서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을 필요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그의 저술들을 따라, 들뢰즈는 그가 ‘통제 사회’라 이름붙인 것에 대해 서술하는 데까지 나아가 ‘기술적 발전’이 ‘자본주의의 변이’를 불러온 방식을 해명하기 위하여 ‘규율 권력’이라는 푸코의 개념을 발전시킨다.(1992: 6) “위기”에 처한 “내부”의 공간들에 대해(1992: 3) 그리고 “통제 사회가 ... 규율 사회를 대체하고 있다.”(1992: 4)고 논하면서, 들뢰즈는 규율에서 통제로의 이행을 기술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내에 위치시킨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제 사회는 ... 정보 기계로 작동하는데, 거기에서 수동적 위험은 잡음(jamming)이고 능동적 위험은 해적질과 바이러스 감염이다. 이 기술적 발전은 (훨씬 더 심오한) 자본주의의 변이(에 뿌리내리고 있다.) ...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생산을 향해 있지 않으며 (복잡한 형태의 직물업, 야금업, 정유업조차) 제3세계 주변부로 추방된다. ... 자본주의는 빚을 지기에는 너무 가난하고 감금하기에는 너무 많은 인류의 4분의 3의 극심한 빈곤을 일정하게 유지해왔다. 통제는 사라지는 개척지 뿐만 아니라 빈민촌이나 게토의 폭발도 다루어야 할 것이다. (1992: 6)[각주:19]

 

   이런 기술적 자본주의의 강화는 시온주의 전쟁에 대한 들뢰즈의 분석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 “이스라엘 첩보부가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는”(1988: 28)것에 주목하면서, 들뢰즈는 이스라엘 국가에서 발전하는 중인 식민지적 통제와 탄압의 모델이 수출가능하고 전지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논한다. 이스라엘의 통제사회에 관해 쓰면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모델은 테러리즘의 현행적인 문제들에서, 심지어 유럽에서조차도 결정적이다. 준비 중에 있는 국가들 간의 국제적 합의, 국제적인 치안 조직과 사법 조직, 이런 것들은 필연적으로 점점 더 잠재적 “테러리스트”들과 동일시되는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는 실험에 앞장서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는 다른 나라들에서 수익을 창출할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사정에 맞추어질 탄압의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책에는 커다란 연속성이 있다. ... 점령한 영토에서 떠나라는 독촉은 거기에 식민지들을 설치하라는 당위로 변환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으로의 국제 병력 파견을 훌륭하다고 보고 있다... 국제군이 그 지역을 치안 구역 혹은 통제된 황야로 변환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고 가정하면서 말이다. (1978: 24)

 

   따라서,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정착민 식민주의를 발생하고 증식하는 식민지적 자본 축적의 새로운 체제 그리고 감시와 통제의 양식들과 뒤얽히게 하는 분석이다.[각주:20] 그렇지만, 비록 들뢰즈의 저술들이 시온주의자들의 폭력적이고 축적적인 논리에 대한 강력하고 어쩌면 숙명론적인 비판을 발화하고 있다고 해도, 그의 저술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이 갖는 저항적 가능성들에 대한 긍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 본고의 최종부에서 탐색하고자 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어온 ‘종말론적 역사’(Deleuze, 1982: 29, in Deleuze and Sanbar, 1982)에 맞서서, 들뢰즈는 그들의 사라짐을 구조화하는 식민지적 자본과 강탈의 체제에 필연적으로 도전하는 창조적인 힘으로서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존과 저항에 대해 발화한다.

 

 

인간으로서 팔레스타인사람-됨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탈을 소묘하고, 정착민 식민주의의 심급을 자본의 전지구적 체제와 연결시키면서, 들뢰즈의 저술들은 정착민 식민지적 체제와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 사이의 생산적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1948년 시온주의자 군대가 80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추방한 사건을 명명하는 데 쓰이는 용어인 나크바[각주:21](Shalhoub-Kevorkian, 2016)를 단 한 번 발생한 사건으로 나타내기 보다, 들뢰즈의 저술들은 나크바를 현재진행형인 구성적 기계로, 혹은 랄레 칼릴리(Laleh Khalili)가 ‘파괴의 습관’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변환한다.(2014) 그렇게 함으로써, 들뢰즈의 저술들은 팔레스타인사람-됨에 대한 어떠한 존재론도 해명할 수 없는 현대 세계 질서의 무능력을 강조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체성을 죽음과 공-현존하는 것으로 표시한다.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굴복 외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1978: 23)

 

   그런데,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지적 사회 질서에 대한 격정적인 비판들에서도 들뢰즈의 저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이 갖는 인간-됨을 긍정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식민지적 순서열에서 “밑바닥”에 놓여져있음을 고려하면, 그 긍정은 동시에 인간이라는 범주를 재구성하거나 파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McKittrick, 2014: 3–4) 프랑스-팔레스타인 문예지인 《팔레스타인 연구(Revue d’Études Palestiniennes)》[각주:22]에 수록된 기고문을 참고하면, 들뢰즈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과는 같은 민족이 아니다”라는 이스라엘의 오만한 사고방식을 향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연구(Revue d'Études Palestiniennes)》지의 창간호가 내보인바 있는 그들의 외침으로 끊임없이 응답한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과 같은 하나의 민족이다. 우리는 그저 그러기만을 원할 뿐이다 ...””(1983: 32)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생을 탈예외화하고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간임을 긍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존을 구조화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부정을 무너뜨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에 대한 긍정의 중심 대상으로 인간을 활용함으로써 들뢰즈는 난민, 망명, 테러리스트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의 현상태를 오직 현대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으로 선전할 뿐인 특수한 자(specialist), 소수자적이거나 독특한 주체들의 영역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징집하는 소수자화하기의 전술들에 반대한다. 그보다는, 그가 말했듯, “새로운 양심을 증언하고 있”는, 끈질기게 지속하는 팔레스타인의 현존 그리고 저항으로서의 현존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을 사회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현대 세계 질서를 정의하는 식민화하는 배치들(assemblages)에 맞서거나 변형하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긍정한다. (Deleuze, 1982: 25, in Deleuze and Sanbar, 1982).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에 대한 들뢰즈의 긍정은 처음에는 “사람을 다른 존재자들과 나란히 놓는 ... [그리고] 인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지렁이, 돌멩이, 파인애플 등 모든 존재자의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동등성을 주장하는 그의 존재의 일의성에 대한 헌신”(Stark and Roffe, 2015: 10)로 종종 이해되는 그의 잘 알려진 반인간주의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이라는 범주의 해체에 대한 들뢰즈의 헌신은 대문자 인간(Man)을 넘어서거나 탈출하고자 하는 많은 들뢰지안 이론가들을 사로잡았고, 대신에 “힘들과 강도들 그리고 마주침들의 그물망을 구성하는 전인간적(pre-human) 혹은 심지어 비인간적(non-human) 요소들”(Braidotti, 2006: 41)에 집중한다.(예를 들어, Sellbach and Loo, 2015; Laurie, 2015; Stark, 2015; Ansell-Pearson, 1999; Colebrook, 2014; Grosz, 2008을 보라)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에서 들뢰즈는 비인간에 집중하기보다 대문자 인간(Man)의 식민지적 순서열에서 추방된 그러한 인간들을 긍정함으로써 대문자 인간의 오류 혹은 폭력을 드러낸다. 이런 생을 긍정하는 정치학(life-affirming politics)은 인간이라는 범주의 한계들이 단지 비-인간적(non-human) 생의 종속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의 생을 안-인간적인(in-human) 것으로 만듦으로써도 형성됨을 상기시킨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의 ‘평범한’ 인간-됨에 대한 들뢰즈의 긍정은 흑인됨의 실천(praxis)을 통해 인간의 범주를 재형상화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예를 들어, Hartman, 1997; McKittrick, 2006, 2014; Moten, 2013; Weheliye, 2014; Wynter and McKittrick, 2014를 보라) 차이나는 방식으로, 연구자들은 흑인됨을 통해 대문자 인간(Man)을 해체하고자 하였고, 서구의 대문자 인간 중심의 질서로의 초대를 거절하고 다른 “인간 존재의 장르”(McKittrick, 2014)를 찾아나섰다. 예를 들어 실비아 윈터(Sylvia Wynter)의 작품을 탐구하면서 캐서린 맥키트릭(McKittrick)은 “현재 우리의 인식론적 체제 하에서 빈곤화되고 식민화되며 달갑지 않고 이성을 결여한 존재로 내몰린, 인간으로서의-대문자-남성(Man-as-human)이라는 범주의 밑바닥에서 지금껏 살아온 이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을 제공할 수 있는 또한 그러고 있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2014: 3) 그렇게 함으로써, 맥키트릭은 대문자 인간의 형상을 탄생케 한 식민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역사들의 설립을 경유하는 인간으로서의 대문자-남성이라는 주제를 형해화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실천(praxis)으로서의 인간을 우리의 이해 범위로 가져오도록” 초대하는 것이며, “인간을 동사로, 대체가능한 것으로, 관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비선택(dysselection)[각주:23]의 자연화를 축출해내는 것이다.”(2014: 7)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1978[각주:24], 1983, 1988)에서도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사람-됨은 문화적이고 생물학적인 기술구로 혹은 주변부적 집단을 묘사하는 명사로 드러나지는 않으며, 동사로, 인간의 상태로서 팔레스타인사람됨을 분절하는 무언가로 드러난다. 팔레스타인 라말라 지역에서 아랍어로 출간된 팔레스타인 문예지 《정원(al Karmel)》에 실린 1988년의 글에서, 들뢰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딛고 있는 대문자 인간(Man)의 ‘밑바닥’을 활용한다.

점령, 끝없는 점령. 던져진 돌멩이들은 안에서,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해도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 그들에게 부채가 역전되었음을 환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민중으로부터 온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던진 돌멩이, 그 돌멩이는 그들 자신의 돌멩이들이며, 그들의 나라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돌멩이들이다. 누구도 사람을 하루에 하나, 둘, 셋, 일곱 아니 열 명을 죽임으로써 부채를 갚을 수는 없으며, 제3자와 합의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제3자는 책임을 회피하며 모든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을 부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영혼 안까지 들어갔고, 거기에 굴을 파고 꿰뚫으면서 그 영혼을 뒤흔들고 있다. (Deleuze, 1988: 35)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점령 세력을 향해 ‘살아있는 돌’을 던지는 범죄[각주:25]를 저지름으로써 그들의 땅을 회복하려 하는 동안, 들뢰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과 생이라는 하나의 장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그가 다른 곳에서 지배적인 체제에 반대하는 행동의 양태이자 소수적인 삶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탈주선’이라고 일컬었던 것을 생산하면서, 들뢰즈는 팔레스타인의 돌, 그들의 고향의 돌무더기에 숨을 불어넣고, 그러한 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의 양식과 공존하는 것으로 표시한다. “사람들은 이 돌들에서 태어난다.”[각주:26] 이렇게 함으로써, 들뢰즈는 적절하게도 우리에게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온주의자 세력의 구금와 제거에 대항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모든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을 부른다.” 이러한 살아감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의 조건으로서의 죽음을 거부하고 새로운 존재 양태의 생산과 확산을 수반한다. 실로 팔레스타인사람-됨에 대한 들뢰즈의 긍정,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인 자가 되도록, 다시 말해 완전히 ‘평범한’ 민족이 되도록”(1982: 29, in Deleuze and Sanbar, 1982) 허용하는 그의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생을 존재에 선행하여 틀짓는 것의 부적절성을 보도록, 혹은 들뢰즈가 시적으로 제안하는 바, “가능성의 다양체 그리고 매 순간 증식하는 가능성”(1982: 29, in Deleuze and Sanbar, 1982)을 생산하는 저항적인 팔레스타인사람-됨을 보도록 요구한다.

 

 

결론

 

   시온주의적 식민주의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은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착민 식민지적 강탈 과정의 중심성을 중요하게 조명한다. 신체들을 서열화된 집단들로 분리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특정 인구를 소수자화되어 사라지는 것으로 표시하는 우월주의적 분류 체계를 창조한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의 힘은 강제이주, 지배와 강탈이라는 이런 역사적 불의함들이 단순히 그들의 문서 작업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보다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인구를 소모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대문자 인간(Man)의 ‘밑바닥’이라는 영역을 활용하면서, 들뢰즈는 우리가 실천(praxis)(McKittrick, 2014)으로써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람-됨을 말할 때 드러나는 생의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요청한다.

 

   그렇지만, 현재진행형인 소수자화하는 사라짐을 마주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을 들뢰즈가 긍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에 관한 그의 저술들은 그의 광범위한 저작들에서 대체로 언급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으며,[각주:27] 그의 수많은 다른 작업들처럼 기념되는 정전의 목록에서 주제화되지도 않았다. 들뢰즈의 반식민적 저술과 그의 저명한 철학적 작업들 사이의 관계선들을 폭넓게 추적하는 것은 본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긴 하지만, 나의 목적은 그의 광범위한 작업을 빚어내고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정치적 헌신에 대해 말하게 하기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들뢰즈 정전 안에서의 그 저술들의 소외에 관련하여, 나는 어떻게 이러한 배제가 이해되고 또 중요하게는 교정될 수 있을지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하면서 결론짓고자 한다. 사실, 들뢰즈가 논증한 바, 식민적 지배와 선주민 민중에 대한 끈질긴 제거의 역사는 계속해서 동시대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현재 우리에게 강탈과 제거의 식민적 구조들이 동시대의 학문적 시도들에 스며든 방식을 다시 고려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인가된 무지”(1999)에 대한 논의를 가져오면서, 라우나 쿠오카넨(Rauna Kuokkanen)는 선주민 연구자들에 대한 침묵시키기와 소외를 “인식론적 무지”라고 명명하는데, 이는 “지배적인 서구의 인식론적 그리고 지적 전통들 이외의 다른 것들을 계속해서 배제할 수 있게 하는 학술적 관행들과 담론들”(2008: 60)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인가된 인식론적 무지의 틀거리는 중요하게도 우리에게 들뢰즈의 팔레스타인 저술들을 어쩌면 우연히 탐구되지 않은 것처럼 남겨두는 누락들에 대한 선의에 찬 의견들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보게 만든다. 오히려, 스피박과 쿠오카넨 모두는 우리로 하여금 집단적인 침묵시키기과 누락을 식민적 지배와 제거의 더 광범위한 패턴들과 연결시켜서 볼 것을 요청한다. 특정 저작들, 장소들, 민중들 그리고 역사들을 주변적이고, 특수하고 혹은 제대로 된 학술적 지식과는 무관한 것으로 상정하는 것들 말이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의 맥락에서, 이런 집단적인 침묵시키기의 양태는 들뢰즈가 매우 강력하게 비판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에 대한 소수자화 및 제거와 분리된다고는 생각될 수 없다. 만약 ‘인식론적 무지’의 이러한 위계적이고 배재적인 관행들이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을, 더 넓게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서구 철학의 정전 내에서는 연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런 배제를 우리가 과연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 것인가?

 

   들뢰즈의 정전들 내에 팔레스타인 저술들이 포함되기를 요청하면서 결론짓기보다는, 그러니까 자칫 그의 광범위한 저작물들에 대한 이해를 반식민적 정치가 가미되지 않은 것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스쳐로 마무리하는 대신에, 나는 우리가 선주민에 대한 강탈뿐만 아니라 선주민 사상가들의 장기적인 참여가 엄밀한 의미의 들뢰즈 철학의 구성요소였을 수 있다는 접근 방식을 취하기를 요청한다. 생의 주변적인 형식들을 충분히 설명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현재 인식론적 체제가 매우 불충분함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들뢰즈 안의 팔레스타인을 사유하는 도전은 지배적인 세계관 바깥에 자리하는 생의 양태들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배제하기 위해 작동하는 생산의 제도화된 식민적 양태들에 맞서 사유하기 위한 도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천(praxis)의 위치에서 볼 때, 그 도전은 동시에 우리에게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McKittrick, 2014)

 

 

캐서린 메디언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회학 연구원이며 Reproductive Sociology Research Group(ReproSoc)의 회원이다. 이전에는 워릭 대학교의 the Institute of Advance Study에서 Early Career Fellow으로 있었다.

  1. Theory, Culture & Society, Vol. 36(5), 2019, p.45-70. DOI: 10.1177/0263276418816369 [본문으로]
  2. [옮긴이] 각각 〈골칫거리들(LES GÊNUERS)〉(1978)〈팔레스타인의 인디언들(LES INDIENS DE PALESTINE)〉(1982)〈야세르 아라파트의 위대함(GRANDEUR DE YASSER ARAFAT)〉(1983)〈돌멩이들(LES PIERRES)〉(1988). 본문에 인용되는 들뢰즈 저술들의 번역은 국역본이 있을 경우 국역본을 참고하였고, 아닌 경우 원문을 번역하였다. [본문으로]
  3. 자본주의 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중심으로서 전경화된 식민주의에서, 들뢰즈가 논증하는 방향은 급진적 흑인 그리고 제3세계의 지적 사상의 긴 역사를 따르며, 여기에는 에릭 윌리엄스(Eric Williams, 1944), W. E. D. 듀보이스(W. E. B. Du Bois, 1935),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2005) 그리고 안나 줄리아 쿠퍼(Anna Julia Cooper, 1925)가 포함된다. [본문으로]
  4. 팔레스타인에 관한 들뢰즈의 저술들이 대중적 호응에서 비껴나 있는 동안,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프랑스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과 저술들은 분석과 찬사 그리고 비판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프랑스 감옥 투쟁에의 관여는 잘 기록되었고 또 분석되었다.(Zurn and Dilts, 2016; Heiner, 2007; Elden, 2017; Welch, 2011; Brich, 2008; Hoffman, 2012를 보라) 프랑스의 알제리에서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대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비판은 광범위한 참여로 이어졌다.(Butler, 2006; Le Sueur, 2005; Ahluwalia, 2010를 보라) 데리다(Derrida)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사이의 관계는 학술적인 성찰로 이어졌다.(Derrida, 1998; Morrissey, 1999; Chérif, 2008; Wise, 2009를 보라)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알제리 민족지들과 그 결과로 빚어진 개념 ‘아비투스(habitus)’는 비판적 반성의 대상이 되었다.(Goodman and Silverstein, 2009; Loyal, 2009; Yacine, 2004을 보라) 반유대주의와 알제리에 관한 리오타르(Lyotard)의 저술은 선집으로 편집되어 출간(Lyotard, 2002)되었고, 어떤 성찰을 이끌어냈다.(Hiddleston, 2010) 여기서 내가 전적으로 들뢰즈의 백인 유럽 동시대인들의 정치적 활동에 맞물리는 참여만을 표기하는 이유는, 프란츠 파농(2005)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1979a, 1979b)와 같은 동시대인들의 작업에서 반식민주의적이고 반인종주의적인 정치학은 단지 스치듯 접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 중심적이고 주제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5.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Flaxman (2011); Stivale (2014); Storr and Nigianni (2009); Rizzo (2012); Colebrook (2001); May (2005); Hardt (1993); Colman (2011); Justaert (2012); Widder (2012). [본문으로]
  6. 1982년, 질 들뢰즈는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외교관 그리고 역사가인 엘리아스 산바르와의 대담을 담은 기고문 〈팔레스타인의 인디언들〉을 발표한다. 그리고 1988년에는 팔레스타인의 국민적 시인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창간하고 편집하는 팔레스타인 문예지 《정원(al Karmel)》에 에세이를 발표했다. [본문으로]
  7. 질 들뢰즈가 비정치적이라는 가장 강한 혐의는 슬라보예 지젝(Slaboj Žižek)에게서 유래하는데, 그는 “들뢰즈가 단독으로 쓴 텍스트들은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들뢰즈 ‘그 자신은’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정치에 무관심한 저자이다.”라고 주장한다.(2004, 강조는 원문) [본문으로]
  8. 들뢰즈는 엘리아스 산바르와 교류함과 동시에, 알제리의 연구자인 레다 벤스마이아(Réda Bensmaïa)와 서신을 주고 받았고(Deleuze, 1997), 아프리카계 미국인 활동가이자 저자인 조지 잭슨(George Jackson)의 영향을 받았다.(Koerner, 2011을 보라) [본문으로]
  9. 들뢰즈가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을 동요케 하는 것은 반시온주의적 비판의 오랜 전통의 일부이며, 이 전통은 아리엘라 아줄레이(Azoulay, 2013), 파예즈 사예그(Sayegh, 2012), 일란 파페(Pappé, 2004, 2011) 그리고 아흐마드 사디 & 릴라 아부 루고드(Sa’di and Abu-Lughod, 2007)의 작업들을 포함한다. [본문으로]
  10. 이르군은 이스라엘 국가 설립 이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시온주의자 조직이었다.(Hoffman, 2011)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영국 식민자들 둘 다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오직 유대인 전용의 유대인 영토로 만들기 위한 공격적인 폭력 계획에 가담했다. 국제연합(UN), 영국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조직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규정한 바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설립 이후, 이르군은 이스라엘 방위군에 흡수되어 오늘날까지 여전히 활동 중이다. [본문으로]
  11. 1948년 4월 9일 아침, 이르군은 750여 명의 거주민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마을 데이르 야신을 침공하였고, 출처에 따르면, 120명에서 254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했다. 게다가, 프랑시스 하소(2000: 497)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살아남았던 여성들은 강간당했고, 주택들은 약탈당하고 폭파되었고 총격을 당했으며, 수류탄이 던져졌다.” [본문으로]
  12. 팔레스타인 민족과 그들의 땅이 ‘사라져야’ 한다는 언설은 시온주의적 식민자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표현된 것 중 하나이다. 실제로, 시온주의의 창시자인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e Herzl)은 이렇게 썼다. “만약 내가 낡은 건물을 새 건물로 교체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건설하기 전에 먼저 철거해야만 한다.” (Wolfe, 2006: 38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3. 들뢰즈는 시온주의적 식민화의 중심 요소를 인종 혹은 인종주의라고 명명하지 않지만, 엘리아스 산바르와의 대담 〈팔레스타인의 인디언들〉에서, 산바르는 이스라엘 창건의 중심에 자리잡은 것을 인종주의로 명명한다.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시오니즘 운동은 유대주의를 추방의 근거 그 자체이자 다른 이들에 대한 거부의 근거로 만드는 인종주의적 시각을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다른 인종주의자들이 주도한 유럽에서의 박해에서 결정적으로 도움을 얻은 시오니즘 운동은 그로 인해 그 자신의 방식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지요.” (1982: 28) [본문으로]
  14. 시온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가 인종적 패권의 원리들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분석은 파예즈 사예그(Fayez Sayegh, 2012)를 보라. [본문으로]
  15. 이 주장의 시간성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초, 들뢰즈가 글을 쓸 시기에, 팔레스타인은 통상 “아랍인들”이라고 언급되었고, 시온주의적 식민화는 국제적 담론 상에서 ‘아랍-이스라엘 갈등’으로 언급되었다. 이러한 꼬리표는 1980년대 말 첫 번째 인티파다(Intifada)의 발발 도중에 ““아랍”-이스라엘 갈등은 근본적으로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이었음이 구체적인 방식으로 분명”해지면서 다소 변화하였다. (Zahama, 1995: 44) [본문으로]
  16. 들뢰즈와 산바르의 친밀한 우정에 대해 증언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어, 2004년에 쓴 책 『팔레스타인 사람의 형상들(Figures of the Palestinian)』에서 산바르는 ‘질 들뢰즈, 완벽한 우정에 경의를 표하며’라는 말로 책을 들뢰즈에게 헌정하였다. [본문으로]
  17. 북아메리카-팔레스타인 연대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2016년에는,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북아메리카의 선주민 부족 스탠딩록 수(Standiing Rock Sioux)와 그들의 땅에 송유관을 설치하려는 미국 정부에 맞선 그들의 싸움에 연대하는 편지와 영상을 공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의 역사를 읽을 때, 나는 당신들의 역사에 비춰진 나와 나의 민족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싸움이 곧 나의 싸움이며, 불의에 맞선 싸움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내 심장으로 느낍니다.” (Norton, 2016) [본문으로]
  18.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착지 식민주의에 대한 들뢰즈의 간략한 분석은 두 기획이 각자 자본 그리고 노동과 다르게 관계맺는 방식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차이를 뭉뚱그리거나 생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미국 정착민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노예화한 아프리카인들을 들여오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선주민 집단학살은 선주민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거의 활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Dunbar-Ortiz, 2014) 반면에 이스라엘에서 오슬로 협정 이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는 일이 흔했다. (Shafir, 1989) 이러한 차이나는 정착민 식민지 경제들에 대한 분석을 비교하려면 또한 D. C. M. 플라트 & 베로니카 파치니 케차바우 (Platt and Pacini-Ketchabaw, 1985), 칼 솔버그(Soberg, 1987) 제레미 아델만(Adelman, 1994)을 보라. [본문으로]
  19. [옮긴이] 국문 번역은 질 들뢰즈, 「통제사회 후기(Post-scriptum sur les sociétés de contrôle)」 (1990), 백욱인, 『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2023) 커뮤니케이션 북스, p. ⅹⅵ-ⅹⅷ에서 재인용. 소괄호는 내용 이해를 위해 본문에는 빠져있는 단어를 되살린 것이다. [본문으로]
  20. 더 최근에는, 조셉 푸글리스 (Joseph Pugliese, 2015)와 에얄 와이즈만(Eyal Weizman, 2012)가 이스라엘의 파괴와 통제 기술 개발의 결과로 발생한 수익성 산업에 대해 기록하였다. [본문으로]
  21. [옮긴이] 나크바(Nakba)는 ‘재앙’, ‘대재난’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국이 선포되고 76만여 명의 팔레스타인이 추방당한 사건과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건국일 다음날인 5월 15일을 ‘나크바의 날’로 기리고 있다. [본문으로]
  22. 《팔레스타인 연구(Revue d’Études Palestiniennes)》지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인 엘레아스 산바르는 그가 학술지를 준비하면서 필요한 커넥션들을 제공해준 사람이 들뢰즈라고 적고 있다. (Halevi, 1994) [본문으로]
  23. [옮긴이] 실비아 윈터의 개념으로, 서구의 여러 이분법(여성/남성, 백인/비백인, 장애인/비장애인...) 중에서도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에 뒤따르는 선택/비선택의 이분법 중 한 축을 이르는 것으로, 역사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온 어떤 것들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4. [옮긴이] 원문에는 1979a로 되어 있는데, 1978 〈골칫거리들(LES GÊNEURS)〉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수정했다. [본문으로]
  25. 이스라엘 형법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돌던지기를 흉악 범죄로 규정한다. 이 글이 쓰이는 시점에, 이스라엘 국가는 돌던지기에 현행 2년형을 20년형으로 늘리는 방안을 지금도 추진하는 중이다. [본문으로]
  26. [옮긴이] 이 문장은 들뢰즈의 미출간 선집 《광기의 두 체제(DEUX RÉGIMES DE FOUS)》 불어 원본에 수록된 〈돌멩이들(LES PIERRES)〉에는 없는 문장으로, 영역본인 《Two Regimes of Madness》에 수록된 〈Stones〉에도 없는 문장이다. 그러나 Mustapha Kamal이 영역한 〈Wherever They Can See It〉에 이 문장이 실려있고, 《정원(al-Karmel)》에 실린 아랍어 원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점들에 미루어보아, 실제 아랍어로 발행된 원고와 들뢰즈가 남긴 불어 원고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어본에는 Kamal의 영역본에는 없는 문장 및 문단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7. 들뢰즈가 팔레스타인에 참여(engagement)하던 동시기에, 그는 펠릭스 가타리와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2》를 공저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 저작에서 팔레스타인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프랑수아 도스(François Dosse, 2010: 261)는 “전쟁 기계라는 개념은 국가가 없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해 사유하기에 특히 적합하다.”라고 썼다. 이에 더하여, 《대담: 1972-1990(Pourparlers: 1972-1990)》(신지영 옮김, 2023, 갈무리)에 수록된 〈중재자들〉이라는 들뢰즈의 에세이에서 그는 “소수 담론”을 논의할 때 팔레스타인을 간략하게 고려한다. 여기서 그는 묻는다. “(민중의 구성 운동을 포착하는 것이지요. 민중은 미리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민중은, 파울 클레가 말했듯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은 아니라고 말하죠. 틀림없이 있었어요.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그것이 아니죠. 본질적인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영토에서 쫓겨나는 순간부터 그들이 저항하는 한, 민중의 구성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 (이런 식으로 구성되지 않는 민중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식민지 담론을 참조하는 기존의 허구들에 소수 담론이 대립하는 것입니다. 소수 담론은 중재자들과 함께 만들어지지요.” (1997: 126) (2023: 231) [옮긴이] 소괄호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앞에 생략된 내용을 추가로 인용한 것이다. [본문으로]